라이어 1
- 저자
- 서림
- 출판사
- 엘블링
- 출판일
- 2014-06-09
- 등록일
- 2016-06-22
- 파일포맷
- 파일크기
- 207 Bytes
- 공급사
- 에피루스
- 지원기기
- PC 프로그램 수동설치 뷰어프로그램 설치 안내
책소개
드라마처럼 자신에게 쌍욕을 하거나 대거리하는 여자는 왜 단 한 명도 없는 건지 강현은 늘 의문이다. 정말 김건모의 노래처럼 짧은 머리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여자가 나와서 자신의 이런 막돼먹은 행동에 쌍욕이라도 날려주면 잠시나마 그 여자에게 좀 끌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럼 이 지루한 선 자리가 조금은 재미있게 느껴질 거고, 그 여자와는 잠깐이라도 연애가 하고 싶어질 것 같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강현이 지금까지 만나온 여자들은 하나같이 싫어도 싫다는 말조차 분명히 못하는 바보들이었다. 다들 학벌도 좋고, 직장도 좋고, 집도 부자인데 왜 선 자리에만 나오면 수동적이기 짝이 없는 구시대 여자가 되어 그저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이렇게 싫은 상황에 처해도 싫다는 말도 못한다. 정말 바보들 같다. 저런 여자와 살아야 하다니, 생각만으로도 지루해서 하품이 절로 나온다. 그럴 바에야 일생을 혼자 살겠다고, 늘 새롭게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
“아버지, 진짜 해도해도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내가 너무허긴 뭐이가 너무허냐? 너야말로 너무허지.
“아버지!”
-결혼할 색시 데려오기 전엔 한 푼도 없다. 그런 줄 알어야.
죽겠다고 드러누워도 보고, 죽인다고 달려들어도 보고, 협박도 하고 달래도 보고, 울어도 보고 투정도 부려봤지만 안 되니까 결국 봉달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나왔다.
바로 돈줄.
유산을 안 준단 협박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봉달이 이제 준 것을 빼앗기로 노선 전환을 한 것이다. 강현에겐 정말 일생일대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결혼을 하겠냐고.
진짜 비극은 이런 거다. 정말 돈줄은 강현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약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할 정도로 강현이 호락호락하진 않다는 것. 결국 이 싸움은 진짜 개싸움이 되거나 누구 하나가 죽어나가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
긴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은 강현이 차에 올라탔다. 모든 카드는 거래 정지다. 통장에 있는 돈도 다 뺐을 건 안 봐도 비디오다.
***
“뭐야?”
“이 사건은 검사님 살라고 들어온 사건인가 보네요.”
“뭐?”
갑자기 던져진 사건파일에 놀라서 쳐다보자 영혜가 고갯짓을 까딱하며 열어보란 시선을 던졌다. 고개를 갸웃거린 강현이 의아해하며 사건파일을 넘기자 나오는 건 ‘명예훼손’ 이란 글자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싶어 영혜를 보자 영혜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손가락으로 서류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여길 보셔야죠, 여길!”
“Private actor? 이게 뭐야?”
여전히 사태 파악이 되지 않는 강현이 영혜를 바라보지만 영혜의 표정은 자신만만하기만 하다. 여기서 더 물어봤다간 진짜 바보 취급을 당할 것 같아 강현이 다시 서류로 눈을 돌려 처음부터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영혜의 태도에 호기심을 느낀 준아가 서류를 읽기 위해 강현의 머리 옆에 제 머리를 가져다 댄다.
영혜가 건네 준 서류 속에 나와 있는 사건은 단순 했다. 옛 여자 친구를 파렴치하게 버린 것이 결혼식 당일 결혼식장에서 밝혀져 검사 임용이 취소된 개자식이 그 사실을 밝힌 상대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이다.
***
“약혼녀 행세요?”
“네. 아버지가 결혼할 여자를 안 데려오면 한 푼도 못 주겠다고 하시면서 돈 줄을 완전히 다 틀어막았어요. 나 지금 자판기 커피 사먹을 돈도 없어요. 말 그대로 땡전 한 푼이 없어요. 그래서 약혼녀 행세 해줄 여자가 필요해요.”
“여자 친구를 사귀면 되겠네요. 결혼할 여자를 찾으세요.”
“나 독신주의자거든요.”
“네?”
“사실, 일부일처제 되게 멍청하고 바보 같은 제도란 생각 안 들어요? 평균수명 100세 시대인데 끽 해야 30살쯤에 한 사람을 선택해서 그 사람이랑 70년 동안 행복하게 살라는 거, 무지하게 폭력적이고 무식하지 않아요? 오히려 결혼은 비현실적이고 비인간적인 제도예요. 일부일처제는. 그저 후손양성, 자식 키우는데 있어 좀 더 유리하고 경쟁력이 있으니까 택하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말도 안 되는 거라구요. 인간 본성에 매우 적절치 못한 제도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난 애 낳을 생각 없으니, 그런 무식하고 비인간적인, 결혼이란 걸 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
“그래서요?”
“그래서 윤수씨를 고용하려는 거죠. 멀쩡한 남의 집 자식, 결혼하는 척 데리고 노는 것 보단 이편이 양심적이고 깔끔한 거 아닌가요?”
청산유수 같은 강현의 말에 윤수가 기막히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에 반해 옆에 앉은 정구는 목 없는 개 인형처럼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강현의 말에 공감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