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큐정전·광인일기 : 문예세계문학선 15 (2판)
- 저자
- 루쉰
- 출판사
- 문예출판사
- 출판일
- 2015-10-27
- 등록일
- 2016-06-22
- 파일포맷
- 파일크기
- 554 Bytes
- 공급사
- 에피루스
- 지원기기
- PC 프로그램 수동설치 뷰어프로그램 설치 안내
책소개
나 역시 젊었을 때는 수많은 꿈을 간직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는 대부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아쉬워하지는 않는다. 무엇을 회상한다고 하는 것은 사람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 수도 있지만 때로는 적막감을 금치 못하게도 하는 법이다. 생각의 실마리를 적막했던 옛 시절에 묶어두고 있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없었던 것에 대해 나는 늘 고민해왔는데, 그 중 한 부분이 지금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는 한때 4년이 넘도록 거의 매일 전당포와 약방을 드나들었던 적이 있었다. 몇 살 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약방의 계산대 높이는 내 키와 같았고 전당포의 그것은 내 키의 두 배였다. 나는 내 두 배인 전당포의 계산대 앞에 서서 옷가지나 금붙이 따위를 올려주고는 모욕감을 느끼면서 돈을 받아다가 이번에는 숙환으로 고생하는 아버지의 약을 사기 위해 내 키만 한 약방의 계산대로 달려갔다.
그렇게 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이제는 다른 일로 바삐 움직여야 했다. 약방문을 써주는 의사는 무척이나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약에 쓰이는 재료도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이를테면 겨울의 갈대 뿌리라든지 3년이나 서리를 맞은 사탕수수, 귀뚜라미 한 쌍(그것도 본래의 짝이어야 했다), 열매 달린 평지목(平地木) 등등 모두가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의 병환은 날로 심해져만 갔고 마침내는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 누가 나처럼 어렸을 적에는 남부럽잖게 살다가 몰락해서 곤궁에 처해보았을까? 나는 그와 같은 과정에서 세상 사람들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