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과 바나나
중견만화가 강병호의 글과 그림을 엮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
바나나 먹어봤어? 기동이는 노을빛 받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구경은 해봤어? 기동이는 고개를 떨구며 손톱으로 앙꼬무치를 후벼팠다. 병신새끼, 삼학년이나 된게! 나는 바나나 껍질을 땅바닥에 깔아놓고 신동우 만화마냥 미끄러져 보았다. 미끄럽지 않았다. 어떻게 하든 넘어지고 싶었는데 애꿏은 검정고무신만 찢어져 버렸다.
모두들 생각할 것도 없이 미친 듯이 한곳으로 몰려가고 있는 판에 GNP니, 무슨 파派니, 주의니 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사내와 함께 그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는 전투적이지 않다. 그래서 전투적인 인간들이 저지르는 강퍅하고 타산적인 어리석음과도 무관하다.
그는 어리숙하지만, 어리석지는 않다. 약은 고양이 밤눈 어둡다 고 꼭지 덜 떨어진 지식분자들처럼 만화를 팔아서 가장 자본주의적으로 치장해대고, 내세우기 좋아하고 쓸데없는 이론이나 직수입해다가 파는 뜨내기들과도 좀 다르다. 그는 최소한 진지하다. 세상의 잔일에 대하여 아파할 줄 알고, 흥분할 줄 알고 반성할 줄 안다. 날렵하고 거친 선 대신 뭉뚝하고 부드러운 선이 그의 서산 사투리처럼 작품 곳곳에 흥건히 배어있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일 것이다.
책머리에
유년의 고향
해당화 꽃 냄새 흠뻑 찬 검정고무신
얼음지치기 겨울하늘 군불놀이 겨울노을
소금 긁는 누나들 꽃소금 한 봉지
가설극장과 기옥이 누나
한머리 겨울이야기
함께 부르는 사랑노래
패랭이꽃 전설
자장면과 바나나
바보몽땅 선생님 떠나가던 날
원동 육교 아래로 터지는 봄빛
혼인의 노래 , 함께 걷는 길
살아있는 동안은 사랑이라 부르자
깨끔박질 연가
그해 여름, 안녕하세요
깨끔박질 각설이
초가을과 박꽃
목척교 아래 비둘기 떼
어떤 갠 날, 아침버스
다른 북소리
동그라미 그리려다
그해 겨울 시든 호박꽃
한탄강과 쫄병시절 1
한탄강과 쫄병시절 2
갯비탈, 소라꽃 무데기
그리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잎새 끝에 걸린 하늘
애호박과 숨쉬는 땅
찰옥수수 메옥수수
한밤중에 목이 말라
어머니와 엄지발가락
발문 / 윤중호(시인ㆍ「들풀기획」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