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파는 처녀
북한 첩보원과 한국 정보부원과의 기묘한 우정.
그리고 그들이 사랑한 북의 여배우.
분단의 비극을 인간 본질의 관점에서 그린 화제작!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를 문제 삼을 수 있다.
1989년이라면 동구권 및 구소련이 무너진 직후에 해
당된다.
피로 상징되는 ´가족·가문´의 사유 체계의 우위성
이냐 불로 표상되는 ´계급·이데올로기(이념)´의 사유
체계의 우위성이냐를 두고 바야흐로 균형 감각의 모색
을 향한 인류사적 과제가 걸려 있는 그런 시절이었다.
문득 이 장면에서 일찍이 이 나라 소설의 한 새로움
의 장을 연 『광장』(1960)의 작가 최인훈 씨가 이 작
품의 탄생이 4·19로 말미암았다고 머리말에서 적었음
을 상기할 수 있다.
광장과 밀실의 균형 감각의 가능성을 가져온 것이
4·19라면 그리고 그것이 국내적 과제였다면, 구소련
해체 그것은 인류사적 과제라 할 것이다.
전자가 내발적이자 직접성이어서 내면화와 아울러
그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후자는 우리의 처지
에서 보면 간접적인 것이라 할 것이다.
그만큼 『꽃 파는 처녀』의 지속성 유지엔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했다고 볼 것이다. 이를 물리칠 수 있는
새로운 충격파가 개입하였는데 이른바 황장엽 사건이
그것이다.
(김윤식/서울대 국문과 교수)
<맛보기>
1970년 늦가을 이른 저녁, 정사용은 지난 3개윌 동
안 밀봉 교육을 받았던 아지트를 나와 평양대극장 부
근에 있는 예술가 아파트에 도착했다. 그는 그동안 떨
어져 지낸 아내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을지 이리저리
그려보며 아파트의 층계를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올
라갔다. 3층에서 복도를 걸어가다 어느 한 문 앞에 섰
다. 그곳에서 그는 옷매무시를 다듬었다.
마치 오랫동안 사모하였던 여성을 처음으로 대하듯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초인종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아내의 아리따운 모습이 드러났다. 미소 짓는
아내의 표정에 어떤 슬픔이 깃들여 있었다,아마 당에
서 그가 다음날 새벽에 서울로 남파된다는 이야기를
했으리라고 직감했다.
서울, 20년 전인 1950년 9월 말에 마지막 본 고향.
그러나 10년 전아내를 만난 이후 그의 고향은 어디까
지나 아내의 눈망을 속에, 아내의 미소 속에, 그리고
아내의 품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응접실로 들어갔다. 된장찌
개 끓이는 구수한 냄새가 집안에 배어 있었다. 다음날
새벽이면 떠나야 하는 아픔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