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시간
김원우의 소설에서 우리의 삶은 우리가 믿고 생각했
던 것보다 훨씬 더 불투명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것
이 곧 희망은 아니더라도 희망의 터전은 된다. 삶의
불투명성이란 과거 전체가 이 현재 속에 하나의 얼굴
로 나타나, 그 삶이 어떤 압제, 어떤 수모 속에서 영
위되더라도 예외적인 것이나 잠정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질을 가진 것임을 알려줄 수 있는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사실탐구의 의의가 거기에 있다. 희
망에는 얼굴이 없으며, 투명한 것에는 희망이 없다.
김원우가 뛰어난 사실주의자인 것은 그가 발견한 불투
명한 삶에 있다.
- 황현산(고려대 교수)
<맛보기>
이제서야 한밤중의 느닷없는 총소리와 함께 1960년
대의 혁명이 시작될 때처럼 갑작스럽게 막을 내린
1970년대 말을 되돌아보려는 지금, 나는 공동묘지 속
의 어느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을 조상의 무덤을 찾아
나선 기분에 휩싸여 있다. 그 가파르던 시국 속을 헤
쳐 나온 나의 정황을 추억해 본다는 것이 대단히 망설
여지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의 엉거주
춤한 자세를 즉시 가다듬고 성큼 발걸음을 떼놓아야
하리라는 졸갑증도 없지 않다.
다행스런 일은, 갑작스럽게 출세한 사람이 초라하기
그지없을 조상의 묘자리를 찾을 수는 있으리라는 막연
한 예감이 든다는 점이다. 괴로운 일이다. 결코 잊어
버릴 수 없는 세월을 의식적으로 망각의 늪속에 묻어
두고 있었으니 말이다. 비록 개망나니라고 해도 조상
을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는 얼치기가 어디 있겠는가.
분명히 밝혀 둘 것은, 이제 나는 한 사람의 유족하고
건강한 시민으로서 내가 한때 힘겹게 종사했던 그 직
업에 대해 전혀 미련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의
한때의 맹목적인 열정과 치기어린 문화편애벽, 내 주
변으로 떼를 지어 몰려오던 저 우매한 대중 따위들을
매도하고 있다는 사실도 미리 첨언해 두어야겠다.
아무튼 한기와 진땀이 번갈아 가며 내 의식과 몸뚱
아리를 흥건히 적셔 대던 그 춥고 피로하던 생활, 그
런 생활에 껴묻어 지내던 여자들, 그런 여자들과 시시
덕거리던 한심스러운 시간 등등에 대해서 몹시도 짜증
을 내면서 동시에 탐하기도 했던 ´조울증 시절´에 나
는 지금 최대한의 환멸을 표하고 있다. 요컨대 나는
지금 확실한 유한계층이 되어 있으므로 때이른 회고취
미에 빠져서 환멸을 찾아가는 발걸음을 떼놓고 있는
셈이다. 그다지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긴 한데, 사람이
란 어떤 짐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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