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색인(黃色人) 제2권
비가 내렸다. 캄란에서 승선하게 되어 있는 5백여 명의 귀국 장병이 거의 승선을 끝내 갈 무렵에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했다. 스콜이었다. 우렛소리를 빼먹은 채 기습하듯 내리기 시작한 비는, 늦은 승선 번호를 가진 2십여 명의 옷과 더플백을 흠씬 젖게 했다.
비가 젖고 있는 ´캄란 베이´ 전용 부두의 모습은 음산했다. SEA LAND, NYK LINE, K LINE 같은 유명 해운 회사들의 이름이 박혀 있는 컨테이너들. ´US ARMY´라는 주인, ´EXPLOSIVES´와 물품 번호인 아라비아 숫자가 표시된 폭발물 상자들. 또 사람 몸통 크기의 기둥 꼴로 된 자물쇠들. 그런 것들을 적재하다가 만 8톤, 10톤짜리 대형 트럭들. 밴, 리퍼, 플랫폼 같은 특수 차량들. 두 팔을 밀대고 이곳 저곳에 엎드려 있는 지게차들. 또 그 사이사이에 국방색 천막을 둘러쓰고 무덤처럼 누워 있는 무더기들. 그것들을 감시하듯 굽어보듯 서 있는 탑형 크레인 두 대. 파도에 몸을 맡기고 바다에 떠있는 LST 두 정.
비가 내리기 전까지는 이런 것들이 모두 살아 있는 것으로 보였었다.
귀국 병력을 싣고 왔던 그와 2와 2분의 1톤짜리 트럭들이 줄지어 비오는 부두를 빠져나가고 있을 때까지도 그랬다. 선적과 적재 작업을 하던 근로자들. 그것을 지휘·감독하던 미군 하사관들이 모두 비를 피해 숨어버리고 나자, 부두에는 군수품들과 사정없이 내리꽂히는 빗줄기들뿐이었다. 전체적으로 부두는 녹색맹이 잘못 그런 놓은 파스텔화처럼 흑녹색과 약간의 회색이 무질서하게 뒤섞여 있는 꼴이었다. 월남 땅이라면 어디서든 흔하게 볼 수 있는 바나나 나무나 야자수 한 그루도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월남인 근로자도 볼 수 없었던 것 같았다. 한국인이나 필리핀 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뿐이었다. 지게차의 운전 기사도 크레인의 윈치맨도, 또 그들을 보조하는 사람들까지도 그런 것 같았다. 그들을 부리는 사람들은 모두 미국인 하사관들이었다. 그렇다면 부두는 월남의 바닷가이면서도 철저하게 월남 색깔이 제거된 곳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었다. 미국 색깔 일색. 그들만의 세상. 결국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들만의 음모를 꾸미고, 또 그것들을 실행에 옮기는 곳. 이른바 ´세계 평화와 자유´를 위해 월남전에 참전하고 있는 7개국의 젊은이들이 필요로 하는 일체의 보급품을 공급해 주고 있는 캄란 베이는 그들의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전진 기지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 전진 기지의 관문이 부두인 것이다.
박노하 병장은 두 팔에 힘이 빠지면서 양쪽 어깨가 뻐근해졌다. 그는 초상집에 가서 멋모르고 밤새 춤을 추고 난 기분이었다. 겸연쩍고 쑥스럽고 부끄럽다는, 말로는 다할 수 없을 것이었다. 7개월 남짓한 파월 근무 시간을 따져 보면 그런 기분이 되었다.
그는 가래를 돋우어 빗속으로 내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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