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북 초판본 백록담
현대시의 아버지, 정지용 시인의 두 번째 시집!
1930년대 모더니즘과 이미지즘의 대표 시인인 정지용은 《정지용 시집》 이후 1941년에 두 번째 시집인 《백록담》을 출간했다. 1941년 문장사에서 처음 출간된 《백록담》은 1946년 백양사에서 재판을 찍었고, 1950년 동명출판사에서 3판을 찍을 정도로 인기 있던 시집이다. 이번 더스토리에서 발행한 미니북 초판본 《백록담》은 1941년 문장사 초판본 오리지널 표지디자인을 차용하여 제작했다. 본문은 독자들이 읽기 편하도록 한글맞춤법에 맞게 수정했지만 시의 의미가 훼손되지 않도록 원문을 최대한 살렸다. 간혹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단어나 어려운 한자어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주를 달아 설명했다.
정지용의 두 번째 시집인 《백록담》은 표제시인 〈백록담〉을 포함하여 자연을 노래한 3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절제된 감정과 잘 다듬어진 언어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르렀다는 평을 받는 시집으로, 총5부로 구성되어 있다. 시집 《백록담》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은 〈백록담〉이라고 할 수 있다. 김우창은 ‘감각과 언어를 거의 가톨릭적 금욕주의의 엄격함으로 단련하여’ ‘감각의 단련을 무욕(無慾)의 철학으로 발전시켰다’고 〈백록담〉을 평가했다. ‘한라산소묘’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는 원래 1939년 《문장》 3호에 처음 발표됐다.
정지용은 특히 《백록담》의 작품들에서 산문 형식으로 시를 구성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율조와 심상을 구현했다. 정지용의 시세계는 ‘바다’와 ‘산’이라는 두 단계로 구분하는데, 첫 번째 시집인 《정지용 시집》이 도시와 바다를 배경으로 한다면 두 번째 시집인 《백록담》은 ‘산’을 중심으로 자연과 하나가 되어 느낀 심상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그려냈다. 정지용은 모국어를 활용하여 우리 고유의 목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절제된 언어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려내며 한국 문학의 이미지즘과 모더니즘 계열 시의 새로운 지평을 만든 정지용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 생생하고 선명한 대상 묘사에 특유의 빛을 발하는 시인 정지용. 한국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이상을 비롯하여 조지훈, 박목월 등과 같은 청록파 시인들을 등장시키기도한 시인이었다.
1902년 음력 5월 15일 충북 옥천읍에서 좀 떨어진 구읍의 청석교 바로 옆 촌가에서 한약상을 경영하던 영일 정씨 태국(泰國)을 아버지로 하동정씨 미하(美河)를 어머니로 탄생한 그는 그 당시 풍습에 따라 12살 때(1913) 동갑의 부인 송재숙과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 처가에서 결혼하였다. 이 부인 사이에 3남 1녀가 태어났으며, 그 가운데 차남과 3남은 6.25사변중에 행방불명 되었고, 현재 장남 구관과 장녀 구원만 생존해 있다.
그는 휘문고보 재학 시절 <서광> 창간호에 소설 「삼인」을 발표하였으며, 일본 유학시절에느 대표작의 하나인 「향수」를 썼다. 1930년에 시문학 동인으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전개하였고, 구인회를 결성하기도 하였으며 문장지의 추천위원으로 활동했다. 해방이 되서는 경향신문의 주간으로 일하고, 이화여대와 서울대에 출강하여 시론, 수필, 평문을 발표하였다.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이후 행적은 알지 못하나 북한이 최근 발간한 조선대백과사전에 1950년 9월 25일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요 저서로는 『정지용 시집』『백록담』『지용문학독본』등이 있다. 그의 고향 충북 옥천에서는 매년 5월에 지용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1989년부터는 시와 시학사에서 정지용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다.
I
장수산 1 / 장수산 2 / 백록담 / 비로봉 / 구성동 / 옥류동 / 조찬 / 비 / 인동차 / 붉은 손 / 꽃과 벗 /
폭포 / 온정(溫井) / 삽사리 / 나비 / 진달래 / 호랑나비 / 예장
II
선취 / 유선애상(流線哀傷)
III
춘설(春雪) / 소곡(小曲)
IV
파라솔 / 별 / 슬픈 우상
V
이목구비 / 예장(禮讓) / 비 / 아스팔트 / 노인과 꽃 / 꾀꼬리와 국화 / 비둘기 / 육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