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사람, 이현옥
"평범한 사람 ‘이현옥’, 공부하는 사람 ‘이현옥’이 되기로 결심하다
- ‘나는 왜 이 모양인가?’에서 시작된 ‘학교 밖’ 공부의 길
여기 이름 석 자가 있다. ‘이현옥.’ 당신은 그를 아는가? 아마 모를 것이다. 그는 이른바 ‘셀럽’이 아니며, 그렇다고 ‘재야의 고수’라든지, 또는 숨어 있던 연구자나 학자도 아니다. 그럼 그는 누구인가? 평범한 한 사람이다. 조금 더 범위를 좁혀서 말하자면, 주부(였)다. 그런 그가 육십여 년을 살다가 갑자기 자기 이름을 내걸고 책을 썼다. 왜일까? 평범한 한 사람이, 자기 이름 석 자 앞에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어쩌면 거창하고 어쩌면 과감해 보이는 수식어를 붙이면서까지 대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까?
이 책 『공부하는 사람, 이현옥』을 쓴 이현옥은 1960년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며, 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에서 커리어를 쌓으며 맏이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고, 이후 두 번의 결혼을 하고 네 아이를 낳아 키우며 살아온 60대 여성이다. 대한민국의 보통 시민의 삶을 살며 20대, 30대, 40대를 보냈다고 말해도 되겠다. 그런 그가 나이 50이 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으니, 그 길이 바로 ‘공부’였다. 하지만 그가 나이 쉰에 갑자기, 단순한 지적 호기심에서 공부길에 나섰다고는 할 수 없다. 비록 나이 50이 되어서야 발을 내디뎠으나 그 발을 내딛기까지 수많은 질문이 ‘이현옥’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그 사람 안에서 생을 더해갈수록 켜켜이 쌓이며 확대되고 증폭되어왔기 때문이다. 그 질문의 용량을 더는 견딜 수 없어 그것을 터뜨려 해답을 찾겠다고 나섰을 뿐이다. 그렇게 이현옥, 그의 공부가 시작되었다, 나이 오십에.
그럼, 그리 오랜 세월 반복되고 고농도로 응축되었던 그의 질문이란 어떤 것일까? 진리는 무엇인가? 인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주의 신비는 무엇인가?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런 게 아니었다. 그녀의 질문은 여기서 시작한다. “나는 왜 이 모양인가?”
“나는 왜 이 모양인가? 다들 의지만 강하면 못할 게 없다고들 말하는데 나는 그놈의 ‘의지’를 도무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가 없으니 이 신체는 나에게 붙어 있기는 하지만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대체 어떤 이유로 내 의지가 경우에 따라 다르게 관철되는지, 어떤 이유에서 현재 나는 이 모습이 되었고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면 나도 이 의지박약의 상태를 벗고 다르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가전제품 사용법을 잘 숙지하고 나면 그 제품을 100퍼센트로 활용할 수 있듯 ‘나’라는 사람이 어떤 이치에 의해 이런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결정되는지, 그런 것들이 내 ‘의지’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이해할 수만 있다면, 했어야만 했는데 하지 못한 일을 후회하며 스스로를 낙인찍는 못난이 말고 나 자신을 굳세게 신뢰하는 사람으로 당당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20대, 30대, 40대를 거치는 동안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서 맴돌던 질문, 하지만 해결의 단서를 찾을 수 없었던 이 질문은, 50대에 공부를 시작하고 스피노자를 만나면서 비로소 길을 찾았다.”
- 본문 20~22쪽,「나는 왜 이 모양인가」
20대 이후,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이현옥의 마음은 자기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 대해, 주위의 마땅찮은 사람들에 대한 불만으로 부글거렸다. 하지만 그는 이 들끓는 마음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뭐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를 모르니 자신의 주장이 옳은지 확신할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당신들이 틀렸다”라고 똑바로 들이대지도 못했다. 세상에 대한 막연한 불만이 ‘비판’과 어떻게 다른지도 몰랐고, 그 불편한 감정이 무슨 연유로 생겨났는지,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한마디로 말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무엇보다도, 바로 그것이 알고 싶었다."
"1960년에 태어났다. 복사기도 컴퓨터도 없던 시절에 태어나 어느덧 육십여 년을 살았다. 대학에서는 역사학을 공부했다. 학교를 나온 이후 삼십 대 중반까지는 식구들을 부양하기 위해 돈을 벌었고, 오십이 될 때까지는 네 아이와 더불어 가정주부로 살았으며, 그 이후로부터 지금까지는 학교 밖에서 공부하는 일과 살림살이를 겸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몰라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은 공부해서 알게 된 대로 살고 싶어 공부한다. 앎이 말과 행위로 표현되기까지 그 구체적 과정을 이해하는 데 관심이 많고, ‘변화’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얼마 전부터 국가, 계급, 장애 문제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3년째 공부하지만 한 번도 자신이 연구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제부터는 ‘연구자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 그러려면 좀 더 잘 먹고, 운동도 착실히 하고, 눈도 잘 보호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추천의 글 - 하나
지은이의 말
1. 내 몸도 내 마음도 내 것이 아닌 것 같아서
나는 왜 이 모양인가
‘좋은 삶’이란 어떤 모양?
어떻게든 살아보고 싶어 품은 질문들
어떤 게 진짜 내 마음일까
가까스로 밥을 할 수 있게 되었군요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게 진짜 가능해?
돈, 그것이 문제로다
내 몸이고 내 마음인데 왜 내 뜻대로 안 될까
2. 공부 말고는 방법이 없군요
‘혼자 읽는 책’이 부딪힌 한계
쉰 살, 진짜 공부를 시작하다
공부의 첫사랑, 스피노자와 『에티카』
스피노자가 운명과 대면한 방식
공부에 대한 욕심과 환상
‘열심히’의 다른 사용법
공부의 어려움, 하지만 공부의 그 기쁨
‘글쓰기’는 가장 좋은 공부
3. 공부에도 자립이 필요하다
나의 언어를 찾을 수 있을까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내가 선택하기
내 신체를 변화시키는 ‘재미난 실험’
스스로 선택하고 실행하며 결과를 향유하는 인간으로 살기
내가 ‘차이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나’ 이전에 ‘차이’가 먼저 있었다
운명과 재수를 넘어설 유일한 방법, 능동적 기쁨
나의 노동은 어째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을까
추천의 글 - 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