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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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긴자의 오후는 사람들로 들끓었다. 토요일이어서 보행자의 천국에는 차량도 지나다니지 않고 노상에 벌인 조그만 간이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이나 솜사탕을 사먹는 젊은이들, 그대로 길바닥에 주저앉아 사람 구경을 하며 햇빛을 쬐는 젊은이들, 사진을 찍는 외국 관광객들로 꼭 무슨 일이 일어날것만 같이 붐비었다. 오전 중에 잠깐 내린 비로 거리는 붐비는 중에도 자다가 깬 듯한 신선함이 있었다.



하자와 나는 그곳을 빠져나와서 한큐 백화점 뒤쪽으로 밀려갔다.



「어른들은 너무 오낸만에 만나서 반가우면 울어버리지 않니? 바로 우리도 그렇게 한 사십이 되어 울면서 다시 만나게 되는 게 아닐까 그건 생각이 든다.」



「우리 파리에서 만나자. 파리에서 만날 수 있지 않아. 내가 나중에 파리로 갈게.」



나는 또 몇 번 되풀이 한말을 다짐했다. 오래 기다리던 내 여권이 나왔다는 통지를 받고 하자와 같이 대사관에 가서 찾아 가지고 오는 길에 무턱대고 긴자 쪽으로 나와 보았다. 하자는 아무 말 않고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채 걸었다. 흰깃이 달린 청람색 물방울 무늬 블라우스가 옛 기숙학생 같은 느낌을 준다.



하자는 걸핏하면 내 팔소매를 잡아채며 골을 내는데 골을 내는 내용은 언제나 하찮은 것이었다. 꼭 초등학교 때의 친구처럼 골을 잘 내고, 커진 후 골내기 귀찮아서 웃고 마는 감정 같은 것을 용납하려 들지 않는 하자는, 지금도 골이 난 듯 입을 꼭 다물고 내게 옆모습만 보이며 걸어가지만 지금은 골이 난 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다. 조금 아까 점심을 먹으며 하자가 자리를 뜬 사이, 늘 가지고 다니는 스케치장을 몰래 보았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성혜의 여권이 드디어 나왔다. 여자친구와의 이벽에서 이런 마음이 되는 것은 처음이다 성혜가 우간을 가지러 대사관에 늘어간 사이 혼자 있으려니 마음속에 큰 구멍이 뚫린 듯 울고 싶었다.







하자와 같이 여권을 받아 가지고 나오다가 우산을 두고 온 것이 생각나 나는 다시 대사관으로 들어가고 하자는 버스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우산을 찾아 틀고 나오며 보니 하자가 버스 정류소 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아마 그때 쓴 것인가 보았다.



「하자야, 너도 이남으로 적을 옮기려무나. 나랑 같이 미국가자. 가서 방 하나 얻어 가지고 같이 쓰면 절약도 되고 서로 자극도 되어 좋지 않니.」



다른 때 같으면.



「솔직히 말해서 무섭다 무서워, 교육이라는 게 뭔지.」



하며 웃었을 텐데 오늘은 그냥 아까부터 계속 옆모습만 보이며 걷고 있다. 내가 이북을 음흉스럽고 뭔지 으스스하게 생각하듯 하자는 이날을 그렇게 생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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