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나는 아버지의 서재에 앉아 한 승려의 행적을 읽고

있다. 그 승려란 바로 내 아버지를 말하는데, 아버지

가 승려였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기 때문에 나는

중의 딸년이라는 의식을 전혀 하지 않고 살아왔다. 내

삶이라야 고작 27년 5개월에 지나지 않지만, 이 생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로서는 가늠하기가 어렵다. 물론

아무려면 어떠냐는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이에 대한 결론을 미를 수밖에 없다. 우선은 아버지의

실종을 추적해야 하니까.



나는 두 주일이 지나도록 아버지의 서재를 샅샅이

뒤졌으나 아직 아버지의 책상 서랍 열쇠를 찾지 못했

다. 이제 책갈피를 뒤지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 본문 중에서





<맛보기>



귀국한 첫날 밤이었다. 나는 잠에서 깨어나 자리에

누운 채 혼미한 생각들로 흐느적거렸다.



´몇 시쯤 되었을까?´



나는 시계를 보고 싶었지만 어떤 억제된 힘에 전신

이 눌린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아직 잠결이어서 나

는 흐릿한 생각들을 서서히 맑혀 나갔다.



마침내 잠이 완전히 가시고, 나는 혼미한 상태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갑자기 의식 속을 비집고 잿빛 공간

이 성큼 들어섰다. 나는 그 잿빛 공간에서 파리의 샤

를 드골 공항을 명료하게 떠올렸다. 그리고 콧수염을

기른 최광원(崔光圓) 선생을 처음 만났던 때를 새롭게

기억해 냈다.



그는 점잖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으나, 그 표정

은 어딘지 모르게 탈색한 묵화의 초상을 보는 듯싶었

다. 오십대 남자의 조용한 거동, 그는 내게 다가와 물

었다.



「학생, 김여상 씨 따님이 맞지요?」



나는 바짝 긴장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분명 아버지

의 친구이리라.



「최광원 선생닝이시죠?」



「그래요. 나는 첫눈에 광미 학생을 알아볼 수가 있

었어. 아버지를 많이 닮았군.」



아버지를 닮았다. 나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미

세한 거부반응이 일자, 나는 히죽 웃으며 발가락이 닳

았다는 말을 떠올렸다. 그럴지도 모른다. 유전인자란

발가락 한 곳으로만 모일 수도 있으니까. 아무튼 얼굴

은 물론 육신의 외형 어느 한 곳도 나는 아버지를 닮

지 않았다. 거울 속에서 나는 아버지와 닮은 곳을 단

한 곳만이라도 발견하기를 바랐지만 그 때마다 헛수고

였다. 그런데 최선생은 내가 아버지를 닳았다는 것이

다. 그것도 많이 닮았다니 그의 눈은 마음속까지 꿰뚫

어 본다는 말인가. 어쨌거나 이상한 것은 그의 말을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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