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맛/보/기◑





미스 한이라는 여자가 나에게 자영의 죽음을 알려준 것은 내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사흘이 지나 병원에 다시 출근을 시작했을 때였다.



그날 내가 병원에 출근하자 동료의사와 간호원들은 나를 위로하느라고 한바탕 법썩을 떨어댔다. 어떤 동료는 문상오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미안해했고 어떤 동료는 그래도 어머니가 천수를 누렸으니 상심하지 말라고 나를 위로했다. 그들의 형식적인 위로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느라고 심신이 지쳐 버린 나에겐 몹시 짜증스러운 일이었으나 나는 일일이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내 오전의 진료가 시작되었으므로 나는 그들의 관심권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미스 한의 전화가 걸려온 것은 내가 오전의 진료를 끝내고 진료실에 앉아서 한가하게 담배를 피워 물고 있을 때였다. 나는 귓전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무심하게 흘려 들으며 우두커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창을 절반이나 가린 오동나무의 넓은 잎사귀 사이로 9월의 청량한 햇살이 사선으로 비껴들고 병원에서 가꾼 화원에는 간호학과 학생들이 틀림없을 여대생들이 벤치에 앉아 따가운 햇볕을 쬐고 있었다.



(결실의 계절이라더니.....)



담배가 손가락 사이에서 저절로 타들어 가고 있는 것도 잊은 채 나는 맑은 하늘을 응시했다. 흰 구름이 엷게 번져 있는 하늘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공연히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하여 투명한 하늘에 시선을 못박아 둔 채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선생님 전화예요 !



그때 간호원 미스 윤이 나의 묵상을 깨웠던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서 저절로 타버린 담배를 플라스틱 쓰레기통에 버리고 수화기를 들었다. 미스 윤이 흰 이를 가지런히 드러내고 웃으며 전화를 연결했다.



저, 이현우 선생님이세요?



수화기 저쪽의 목소리는 다소 조심스러운 기색을 띤 젊은 여자의 것이었다.



예.



혹시 이자영이라고 알고 계세요?



이자영......?



기억에 없으신가요?



여자는 실망하여 금방이라도 전화를 끊어 버릴 듯한 기색으로 반문했다.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자영이가 죽었어요.



예?



자영인 오랫동안 폐결핵을 앓고 있었어요. 전 몰랐었는데 주인집 아주머니가 얘기해 주시더군요. 그리고 죽을 때 방안에 객혈을 해서......듣고 계세요?



예. 듣고 있습니다.



나는 약간 얼떨떨한 기분으로 대꾸했다.



방안에 객혈을 해서 선현이 낭자했대요. 오늘이 장례식인 데 참석하실 수 있을지......



참석하겠습니다.



비로소 나는 가슴이 싸하게 저려 오는 것을 느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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