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아사
<맛보기>
<1>
형님,일부러 먼먼 길에 찾아오셨던 것도 황송하온데 또 이처럼 정다운 글까지 주시니 어떻게 감격하온지 무어라 여쭐 수 없습니다.
형님은 그저 내가 형님의 말씀을 귀 밖으로 듣는 듯이 섭섭하게 여기시지만 나는 참말이지 귀 밖으로 듣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내 눈앞에는 초연히 앉으셔서 수연한 빛을 띠시던 형님의 모양이 아른아른 보이고, 순순히 타이르고 민민히1) 책망하시던 것이 그저 귓속에 쟁쟁거립니다.
“형님, 왜 올라오셨어요?”
지난 여름, 형님께서 서울 오셨을 제 나는 형님을 모시고 성균관앞 잔솔밭에 나가서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그건 왜 새삼스럽게 묻니? 너 데리러…….”
형님의 말씀은 떨리었습니다.
“저를 데려다가는 뭘 하셔요?”
나는 이렇게 대답하면서 흐리어가는 형님의 낯을 뵈옵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뭘 하다니? 얘, 네가 실신을 했나 보다. 그래 내가 온 것이 글렀단 말이냐?”형님은 너무도 안타까운 듯이 가슴을 치셨습니다.
“형님, 왜 그렇게 상심하셔요? 버려 두셔요. 제 하는 일을 버려 두셔요.”무어라 여쭈면 좋을는지 서두를 못 차린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글쎄 그게 무슨 일이냐? 응……내가 네 하는 일을 간섭할 권리가 무어냐마는 네가 이런 일을 하는데 내가 어떻게 눈을 뜨고 보겠니? 집 떠난 일을 생각해야지? 집 떠난 일을……왜 내 말은 안 듣니? 네 친형이 아니라구 그러니?”“아이구 형님두.”
나는 형님의 말씀이 그치기 전에 형님 앞에 쓰러져 울었습니다.
“네 친형이 아니라구…….”
이 말을 들을 때에 나는 어떻게 형님이 야속스러운지 알 수 없는 설움을 이기지 못하여 엉엉 울었습니다.
“그러지 말고 가자! 가서 죽식간에2) 먹으면서 좋은 때를 기다려서 다시 오려무나!”“내가 말랐거든 네가 풍성풍성하거나 네가 없거든 내가 있거나……나는 무식한 놈이니 아무런들 상관 있니마는…….”“나두 그놈의 여편네와 애들만 아니면 너를 쫓아댕기면서 어깨가 부서지더라도(목도꾼이라는 뜻) 네 학비는 댈 터인데.”형님은 서울에 닷새 동안이나 계시는 때에 이러한 탄식을 하시면서 나를 달래고 꾸짖고 권하시다가 끝내 나를 못 데리고 내려가셨습니다.
“어서 내려가거라, 더 할 말 없구나.”
형님은 떠나실 제 차에 올라간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한숨을 쉬셨습니다. 아무 말 없이 있다가,“형님, 안녕히…….”
하고 눈물이 핑그르르 돌아서 내려왔습니다. 그 뒤로 이날 이때까지 형님을 잊은 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또 이렇게 글월을 주시고 노비3)까지 부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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