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부터 온 방문객
<맛보기>
그럼 이제 누구를 보내 그를 쓰러뜨리지?
전조가 시작되더니 삼월의 날씨가 저녁으로 접어들면서 습기를 잔뜩 머금었다. 거의 비에 가까울 정도로 짙은 안개가 끼었다. 수다스런 버스 안내원이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안개낀 저녁´이라고 인사하더니, 할 수 없이 버스 위층에 덮개도 없이 마련된 좌석에 올라앉은 사람들에게는 ´비내리는 저녁´이라는 표현을 썼다. 궂은 날씨였지만 워낙에 열악한 조건에 익숙해진 승객들은 즐거이 잡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날씨에 대한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빼어난 화젯거리임에 틀림없다. 안내원은 재치 있게 그런 점을 충분히 활용하는 재능을 타고난 모양이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버스는 런던의 중심가를 관통하는 하루의 마지막 여정을 수행중이었다. 버스 안은 겨우 반밖에 차지 않았다. 그런데도 배짱이 좋아서 그런지, 게을러서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것인지, 누군가 아직도 위에 있다는 것을 안내원은 육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버스가 털거덕거리며 빠르게 길을 내려갈 때 쇠로 된 계단에서 누군가 발을 질질 끄는 듯한 어떤 소리를 내는 게 들렸다.
위에 누가 있나요?
비옷을 걸치고 우산을 들고 내릴 준비를 하는 남자에게 안내원이 물었다.
아무도 못 봤는데요. 남자가 대답했다.
그 말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요. 안내원이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을 요량으로 친근하게 말했다. 이상해서 한번 올라가서 점검해 봐야겠어요.
안내원은 염려가 맞이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오른쪽 앞좌석에 한 승객이 앉아 있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깃을 위로 치켜세우고 잘 다림질된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다가오는 안내원의 소리를 분명히 들었을텐데도 남자는 계속 앞만 주시하고 있었다. 밖으로 쭉 뻗은 왼손의 엄지와 검지손가락 사이에 동전 한 닢이 쥐어져 있었다.
저녁 바람이 참 시원하지요? 안내원이 말을 붙여 보았다. 승객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주근깨 투성이의 창백한 손가락 사이에 끼어있던 동전이 보일 듯 말 듯 아래로 약간 미끄러져 내려간 것 외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웬 날씨가 이리 기분 나쁘게 축축한지 모르겠네요. 승객의 냉담한 반응에 짜증이 났던지 날씨에 대한 안내원의 표현이 급변했다.
그런데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손님, 어디로 가세요? 안내원은 마치 그 목적지가 어디이건 별로 좋은 곳이 아닌 게 분명하다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며 물었다.
캐릭 거리.
어디요? 안내원은 이미 승객의 대답을 또렷하게 들었다. 하지만 승객의 어딘가 이상한 억양을 느낀 안내원은 다시 질문한다 해도 승객이 자신의 억양 탓으로 돌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