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엄마는 사육사요. 아시겠어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게어요. 사육사라고요.

엄마가 알고 있는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남이 그렇싸하게 여기는 박사학위를 얻는 것인가요.

그따위 학위가 보장해 줄지도 모르는 안락한 삶인가

요.

엄마는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에

진실을 못본 척하는 것일까요.

딸의 쨍쨍한 목소리가

되살아나면서 영옥씨는 그만

방바닥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䚩 연암문학상 수상작



미학적 손상을 경계하며 절제와 균형을 유지……

김향숙의 문학이 돋보이는 것은 단순히 현실의 상황

을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현실상황의

징후적 현상이나 시사적인 문제를 담아낸다는 점에 있

어서는 그는 오히려 적극적인 편이라고 할 수 없을런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가 주목을 받는 작가로서의 위치에 있

는 것은 현실주제에 압도되거나 강박됨으로써 오히려

미학적 손상을 초래하는 작가가 아니라 절제와 균형을

유지하면서 작품을 위한 자기 대결의 노력을 역연히

드러내주고자 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 <수상 이유>에서



<맛보기>



두통약을 삼킨 뒤 주방을 나온 영옥씨는 현관 쪽으

로 걸었다. 머리위에 무쇠솥이라도 올려 놓은 듯한 걸

음걸이였다. 머리 전체가 쇳덩이로 여겨지는 두통이

심하기도 했지만 두 다리의 힘이 빠진 때문이었다. 빈

속으로 들어 갔던 술이 이제야 제 힘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차가운 대기가 필요했다. 자신의 팔다리가 연

체동물의 그것처럼 여겨지는 마뜩찮은 이 느낌을 떨쳐

버리려면.



눈동자를 거진 덮은 눈꺼풀 사이로 광택제로 줄곧

닦여진 초록색 아스타일이 깔린 네모난 공간이 비춰

들었다. 마루와의 턱은 낮고 아스타일의 반짝임은 유

별난데다 구석에 놓인 우묵한 항아리의 마른꽃 때문에

신발을 신고 벗는 곳이라기보다 거실의 한 부분 같았

던 곳. 영옥씨는 그곳으로 내려 서지 못했다.



때에 절은 뒤축은 안으로 굽혀졌고 풀어 헤쳐진 끈

의 빛깔은 잿빛인 운동화 한 켤레가 치우지 못한 쓰레

기처럼 현관바닥을 어지럽히고 있었던 것이다. 한 짝

은 거실과 현관바닥 경계지점에, 또 한짝은 현관문 쪽

으로 내동댕이 쳐진 그것들엔 신발 임자가 그것들을

벗었을 때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있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영옥씨는 급하게 허리를 수그려 운동화 두 짝을 들

어 올렸다 몽롱한 취기가 사라지고 노여움으로 번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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