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갈 수 없는 나라는 우리에게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분단´이라는 단어가 우리들에게 안겨주는 이념의

부피.

그 이념의 중핵을 이루는 곳이 갈 수 없는 나라, 바

로 민통선 마을이다.

너무나 쉽게 입에 올려지는 ´통일´이라는 단어가 과

연 분단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얼마만큼이나 절

실한 문제인가.

생명론자들은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벌레 한 마리

라 하더라도 그것에 생명의 소중함을 부여한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한 마리의 벌레보다 못한 하

찮은 생명을 누리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맛보기>



나는 내가 낙타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

다. 그러므로 바늘구멍에 머리를 디밀고 그곳을 빠져

나가려고 애써 본 기억 또한 당연히 없습니다. 하지만

25년 전쯤의 어린 시절에 한 마리의 노쇠한 낙타가 등

에 버거운 짐을 잔뜩 짊어진 채 바늘 구멍을 빠져나가

기 위해 안간힘 쓰는 모습을 지켜본 적은 있습니다.

철딱서니 없이 낙타의 등에 멀뚱히 올라앉은 채로 말

입니다.



낙타라고 했지만, 그리고 바늘 구멍이라고 했지만,

반드시 그 두 가지가 비유의 대상일 필요는 없다고 나

는 생각합니다. 먹이를 찾기 위해 황야의 허공을 날고

있는 어미 새와 둥지에서 먹이를 기다리며 입을 벌리

고 있는 어린 새를 예로 들어도 그 비유는 어설프게나

마 성립할 터이니 말입니다. 또한 갓 낳은 자식을 새

끼주머니 속에 보듬은 채 먹이를 찾아 밀림을 헤매는

캥거루를 예로 들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무튼 내가 낙타네 가족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준 것은 한 낯선 여인의 목소리였습니다. 그것

도 빈정거림이 완연하게 배어 있는 목소리, 그래서 나

는 더욱 잘 기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낙타가 또 한 마리 나타났구먼. 에그머니나, 그

용쓰는 꼴을….」



아버지는 그 말을 진작에 새겨들어야 했습니다. 아

버지가 자존심이 상해서 일부러 새겨듣지 않으면 그

다음의 어른인 어머니와 막내고모 둘 중의 한 사람이

깨달았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붙들고 ´우린

잠시나마 낙타 가족이 됐다´고 설득해야 마땅한 일이

었던 것입니다. 그렇게만 됐다면 그날의 소동은 생각

만 해도 씁쓸함을 지울 수 없는 해프닝으로까지 번지

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내가 이따

금 아버지를 낙타로 생각하며 괴로운 추억을 삼켜야

하는 일도 당연히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 여기서 얼마간 우리가 낙타 가족이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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