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화(乙火)
<乙火>의 전신은 <무녀도(巫女圖)>다. <무녀도>의 모
티브는 그 당시 내가 직면했던 민족적 상황이다.
「민족적 상황」,이것을 어떻게 간단히 설명할 수 있
겠는가. 당시의 침략자 일제는 우리 민족이가진 모든
민족적인 것을 말살하려들었다. 가운데서도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우리의 말과 글을 말살시키려 했던
점이다. 얼마 전까지도 국민학교 교과과정 속에 소위
「조선어독본」이란 것이 있었는데 그 무렵엔 그것 마
저 없애 버리고 자라나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우리 말
과 우리 글엔 아주 소경이 되게 만들고 있었다.
이에 대한 나의 울분과 원한은 무엇으로도 형언할 길
인 없었다.
나는 나의 문학을 통해서라도 우리 민족의 얼과 넋을
영원히 전해야 하리라고 결심했다.
여기서, 그러면 우리민족의 가장 근본적인 얼과 넋은
무엇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민족의 근원적인 얼과
넋은 무엇일까. 나는 우선 그것을 찾기로 했다. 그 방
법으로서 나는 우리같이 불행하지 않은 중국인이나 서
양인의 경우를 생각해 보았다.
그들에게 있어 정신적인 지주가 되는 것이 유교 혹은
기독교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에 필적하는
우리의 것은 묵엇인가.
그것은 물론 유교도 불교도 들어오기 이전의 상고시대
로 소급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내가 만난 것이 샤
머니즘이었다.
나는 우선 우리 나라 무교(巫敎)에 대해 잠깐 조사해
보았다. 고대의 그것은 충분히 연구할 만한 정신자원
임이 틀림 없었으나, 그 뒤 불교 유교 기독교 등 완성
된 외래 종교에 의하여 민속 내지 토속으로 밀려나가
면서 개화가 되고, 기독교가 밀어닥치자 경멸과 증오
의 대상인 미신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민족의 근원적 인 얼과 넋을 찾는다는 동기(모티브)였
기 때문에 미신으로 추락된 샤머니즘을 대상으로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의 종교로서의 기능과 본질을 찾아
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완성종교와 대비시
키는 길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나는
내가 어릴 적부터 의지해오던 기독교를 택하기로 작정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샤머니즘에 붙이려는 문학적 의미는 여
기 그치지 않았다. 나는 일찌기 세계문학전집이란 것
과 서양철학인란 것을 중심하고 이에 관계되는 책들을
광범하게 읽어왔다. 그리하여 그들의 소위 세기말(世
紀末)이란 것과 20세기란 것의 의미를 나대로 이해하
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당시도 흔히 20세기의 「불안과 혼돈」을
말하고, 제일차세계대전의 무서운 살륙과